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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ribble

케이팝은 답을 알고 있다?: 한국사회의 인종차별을 돌아보기

사실 나는 티스토리에 글을 자주 쓰지는 않는다. 무언가 백업하기 위한 용도로 쓰고 있어서 1년에 몇번 갱신 할까 말까 할 정도로 접속률이 낮고, 최근에는 플랫폼 이전을 고민하고 있어서 더더욱 들여다보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티스토리를 여전히 남겨두는 건, 오래전에 쓴 글 하나가 아직도 사람들에게 읽히며 관심을 받고 있고, 그 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종종 마주치기 때문이다. #BlackLivesMatter와 모 고등학교 졸업사진 촬영에서의 '블랙페이스'가 '반만년 역사를 자랑하는 단일민족'이라는 기치에 가려져있던 한국의 인종차별을 낱낱이 밝히는 요즘에는 특히 더 그랬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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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다시 곱씹으면서, 나는 오래 전으로 시간을 되짚어봤다. 이 글을 써야한다고 마음먹었던 계기가 무엇이었을까? 한국 사회의 인종차별적 면모를 분석해보려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원인을 복기하는 과정은, 어쩌면 이 모든 일이 그때부터, 아니 훨씬 오래전부터 예견되었음을 알려주는 단서를 발견하는 것과도 같았다. 

 

그렇게 되짚어 보니, 한 케이팝 남성 아이돌 그룹의 팬이었던 오래 전, 그 그룹의 한 멤버가 까만 계란 사진을 올린 것이 발화점이었다. 그 계란이 유난히 피부색이 어두운 한 멤버를 닮았다던 멘트가 문제였다.

해외 팬들이 당시 작성했던 성명문의 일부. 사진을 클릭하면 전문을 볼 수 있습니다. 

트위터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팬들이라면 굳이 마음먹고 교류하지 않더라도 해외 팬덤의 반응과 코멘트를 쉽게 접할 수 있다. 리트윗은 천리를 간다는 발없는 말보다도 빠르게 확산된다. 이 때도 마찬가지였다. 유난히 피부색이 어둡던 멤버를 "까맣다"라고 놀리는 건 멤버들과 팬들의 유구한 놀잇거리였고, 그들이 출연하는 각종 방송에서도 단골로 활용되던 소재였다. 그러나 그 이야기들은 누군가에게는 전혀 우습지 않은 일이었고, 트위터와 텀블러 덕분에 이 글이 한국의 팬들에게도 전달될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 한국팬들에게 도움을 청하던 해외팬들은 이 상황을 너무나 답답해하고 있었다. 이 문제를 훨씬 이전부터 알려왔고 소속사에도 입장을 전달하였음에도, 소속사는 고사하고 한국의 팬들로부터도 별다른 반응을 얻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케이팝 아래에서 같은 플랫폼을 사용하며 서로의 영향력을 알게 모르게 주고받음에도 이 문제만큼은 마치 없었던 것처럼 취급되다니.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면 답은 간단하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으니까. 

 

물론 "인종차별"이라는 단어가 없는 것도 아니고 그 뜻을 사람들이 모르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흔히 그 단어를 썼을 때 한국인들이 으레 떠올리는 것은 흑인/동양인에 대한 백인의 차별 구도일 뿐이다. 그 외의 그림을 상상할 수 있는 훈련이 되어있는 사람들이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됐을까? 더군다나 동양인으로 살아가는 한국사람들에게는 인종차별의 구도에서 억압받는 자의 모습이 더욱 익숙하다. 어쨌든 범지구적인 관점에서 동양인은 PoC, 유색인종이지 백인은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인종차별자!라는 말을 들으면 이해가 안되고 화부터 낼 것이다. 중국인을 보고 "짱깨"라 하며 욕하고 흑인들에게는 "흑형"이라며 과도한 친근감을 표현해왔으면서. 해외팬들이 건네준 성명문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들이 머리 속에 스쳐지나갔었다. 

 

그래서 나는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뜻이 맞는 친구와 함께 트위터 계정을 만들었고, 해외팬들의 목소리를 전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가 깨달은 점을 우리의 언어로 다시 정리했다. 별다른 반응이 없을까봐 걱정했던 것도 잠시, 리트윗을 타고 타임라인 멀리 이야기가 퍼져나갔다. 반발이 심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공감의 의견을 여럿 확인할 수 있었고, 우리의 글을 읽고 이를 지지하는 글을 새롭게 써서 올린 팬들도 많았다. 기대 이상이었다. 비록 이후 멤버들이나 소속사에서 정식적인 피드백을 내놓지는 않았지만, 눈치의 나라 대한민국답게 어느 정도 이런 분위기를 의식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는 있었다. 이제 이런 농담은 그만두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그렇게 조금씩 형성되기 시작했다. 

 

다시 돌아가서 조금 희망적인 이야기를 해보자면, 그동안 표면에 드러나지 않던 한국 사회의 인종차별과 갈등이 케이팝으로 인해 가시화되었다는 사실을 도출해낼 수도 있다. 이는 단순히 케이팝이 세계 곳곳에 널리 알려졌다는 사실을 넘어서, 케이팝이 세계 사회의 어떤 계층에게 소구점이 있는지를 들여다보면 자명하다. 나는 한 때 좋아하던 아이돌이 진행한다는 이유로 아리랑TV의 After School Club을 열심히 챙겨본 적이 있다. (평일 오후에 하는 본방은 직장인에게는 답이 없는 시간대라 나중에 다시보기가 뜨면 브이앱을 켜는 수고를 들이면서) 이 프로그램은 케이팝 아이돌과 그 해외 팬들에게 교류의 장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는데, 사연을 보내거나 전화연결을 하는 팬들을 보면서 흥미로운 포인트를 발견했다. 같은 아시아권이라서인지 동남아 출신의 팬들이 상당수였고, 유럽이나 미국 등 흔히 "1세계"로 분류되는 국적이더라도 그 안에서 PoC로 살아가는 팬들도 여럿 볼 수 있었다.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케이팝은 서브컬쳐를 즐기는 소수자들을 적극적으로 팬덤으로 포섭하고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사실 이게 케이팝이 의도한 결과는 아니라는 점이다. 케이팝 기획사들이 해외진출을 준비할 때 그들은 가깝게는 일본이나 중국 등의 주변국, 멀리 보면 유럽이나 영미권 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머리 속에서는 동북아시아인들이나 백인들이 케이팝에 열광하는 모습이 아름답게 그려졌을 것이다. 이건 지금도 별다를 것이 없어보인다. 해외 공연에서 유독 객석 컷을 많이 집어넣는 음악방송의 카메라 워크에는 유독 백인들이 자주 잡힌다. 케이팝 해외 팬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딸 때도 백인들이 대표된다. 실제로 공연장 앞에서 밤을 새워 아이돌을 기다리는 사람들 중에는 라틴계나 아시아계, 아프리칸 어메리칸들이 다수를 차지고 있음에도. 연일 해외 차트에서 좋은 결과를 거두는 케이팝 아이돌의 성과는 확실히 눈부시다. 그러나 유독 백인으로 대표되는 국가에서 선전하는 모습이 더욱 자랑스러운 것으로 간주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분의 머리 속에서도 백인들이 케이팝 튠에 맞춰 리듬을 타는 모습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지? 단순히 그들 국가의 차트가 가지는 권위 때문일까? 왜 동남아권에서 선전하는 아티스트의 성과를 두고는 이를 폄훼하는 말이 오가는지?

 

바로 여기에서 갈등이 빚어진다. 실제로 케이팝을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주체는 유색인종임에도, 케이팝 산업은 그들에 대한 고려를 어느 정도나 하고 있을까? 나는 자신있게 대답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나는 현재의 상황이 그리 놀랍지 않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아프리카인으로서 인종 차별을 지적해도 반대 의견에 부딪히고, 네이티브 아메리칸이나 블랙 컬쳐의 요소를 컨셉으로 차용하는 문화적 전유가 빈번한 것도 어찌보면 당연하다. 케이팝으로 대표되는 한국 대중문화를 즐기는 한국인들의 머리 속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시나리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상당수의 소비층은 인종차별과 싸워온 유색인종이며, 유럽/영미권 국적의 팬덤이라면 이를 더욱 절실하게 느껴왔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목소리를 크게 내는 것도 당연하다. 그들의 세계에서 케이팝이 보이는 모습은 그들이 오랫동안 싸워온 다른 기득권 문화와 별반 다를 게 없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지금이 과도기에 있다고도 생각한다. 주류가 아니었던 문화가 주류의 반열에 오르면서 겪는 성장통일 수도 있다. 케이팝이 퍼지기 전에 이토록 한국 문화가 전세계의 시선을 한몸에 받은 적이 있었던가? 그렇기에 케이팝은 역으로 해외 팬덤이 한국문화와 한국인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는 장이 되기도 한다. 케이팝 아이돌의 사진을 일부러 톤다운시켜 자신의 피부색을 사랑해야 한다는 말을 하는 해외 팬덤도 있고(흰 피부를 선망하는 한국 문화에 문제가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2인칭 대명사일 뿐인 "네가"가 영어의 N-word와 비슷한 발음이라는 이유로 규제하여야 한다는 의견이 큰 호응을 얻기도 한다. 서로 예상치 못한 문화 충돌로 인해 혼란을 겪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각자의 잘못을 들어 자신의 과오를 방어하려는 논리는 바람직하지 않다. 그것을 오히려 서로를 이해하고 문화 저변을 넓혀가는 계기로 활용하면 안되는 것인지?

 

여성혐오나 인종차별 등, 그동안 케이팝에 내포된 여러가지 문제점을 지적하고 의견을 나누면서, 나는 케이팝에 담겨있는 문제들이 결국 한국 사회 전반의 문제를 압축하고 있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케이팝이 갖고 있는 문제점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쓰여서는 안된다. 반대로, 어쩌면 케이팝은 한국 사회가 갖고 있는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단서가 될 수 있다. 특히 다양한 국가와 문화적 배경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활발히 공유하는 일종의 플랫폼이 되었다는 점에서, 그간 다양하게 생각해보지 못했던 "세계 시민으로서의 한국인"에 대한 좌표를 재설정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해보면 좋지 않을까. "케이팝 머스트 다이"를 외치든, 그래도 케이팝을 살려야한다고 믿든, 이제 세계를 아우르는 문화가 된 케이팝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사회를 바꾸어나갈 힌트를 얻을지도 모른다. 반면교사도 교훈이긴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