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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2019 올해의 앨범

2019년 발매작 중 인상 깊었던 앨범을 (매우 주관적인 감상으로) 정리합니다.

발매일 순으로 작성합니다. 

 

1. Sharon Van Etten - Remind Me Later

한 해를 시작하기에 너무나도 잘 어울렸던 앨범이다. 잔잔한 피아노로 조용히 막을 여는 <I told you everything>와 <Comeback Kid>, <Seventeen>처럼 폭발적인 비트를 오가는 Remind Me Later의 세계의 중심에는 늘 포근하게 내려앉는 Sharon Van Etten의 목소리가 자리잡고 있는데, 마치 변덕스런 일상 속에서도 우리에게 안정감을 주는 따스함이 있다는 메시지가 읽히기도 한다. 모든 순간에 진심을 담아 노래하는 Sharon의 앨범이 있어 지난 1년을 무탈히 보냈던 것만 같다. 위로를 받고 싶을 때도, 용기를 얻고 싶을 때도 어떤 확신을 주는 이 앨범으로 2020년을 시작해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2. Solange - When I Get Home

전작 A Seat at a Table을 흥미롭게 들었다면 반드시 체크했어야 한다. 전작에서 흑인 여성의 입장에서 사회를 향한 목소리를 내는 것에 집중했다면, 이번 앨범에서 Solange는 자신의 고향을 주제로 힙합, R&B, 재즈를 한데 아울러 정체성의 뿌리를 되짚는 여정을 다룬다. 그래서인지 가사는 조금 단순해지고 사운드가 더욱 다채로워졌는데, 청자에게는 듣는 즐거움을 한껏 안겨줌과 동시에 그의 메시지에도 더욱 귀를 기울일 수 있게 된다. 차분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누구보다 뜨거운 열정이 가득한 이 앨범을 좀 더 즐기고 싶다면 동명의 아트필름도 반드시 함께 체크할 것. 

3. Sigrid - Sucker Punch

이미 여러장의 싱글과 EP를 통해 차세대 스타로 각광받았던 Sigrid. 이제는 풀 렝스 앨범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 매력을 발산하는 아티스트로 한 번 더 발돋움을 한다. 그의 매력을 재확인 할 수 있는 <Sucker Punch>나 <Don't Feel Like Crying>, 우리에게 첫 인사를 건네는 <Mine Right Now>나 <Business Dinners> 같은 트랙들을 지난 뒤 순식간에 마지막 트랙 <Dynamite>에 도착하게 되면, 유원지의 짜릿한 어트랙션을 타고 난 듯한 즐거움과 뿌듯함이 남게 된다. 이 보석 같은 재능이 앞으로는 얼마나 더 정교하게 다듬어질지, Sigrid의 다음 행보를 기대해보자.

4. The Comet is Coming - Trust in the Lifeforce of the Deep Mystery

전개는 더욱 과감해지고 사운드는 풍부해졌다.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의 서사를 그려내는 듯한 The Comet is Coming의 이번 앨범은 Shabaka의 색소폰을 중심에 두고 이를 든든하게 서포트하는 드럼과 전자음을 마치 항공 편대처럼 엮어내며 우리의 머리 속을 신나게 질주한다. 일촉즉발의 서스펜스를 러닝 타임 내내 유지하는 정교한 집중력에는 모두를 끌어당기는 엄청난 중력장이 작용하는 듯 하다. 특히 모든 사운드가 날개돋힌 듯 날아다니는 <Summon the Fire>와 그 바톤을 이어받는 <Blood of the Past>의 연결은 올해 만난 트랙들 중 가장 짜릿한 조합.

5. Nilufer Yanya - Miss Universe

Miss Universe라는 앨범을 한 단어로 정의하자면 "대범함"일 것이다. 17곡 전체를 새로운 곡으로 채워넣은 것, 자신의 고민과 불안을 솔직하게 녹여낸 것, 그럼에도 자기애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 모두 대범한 자신감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그만큼 치열한 준비 끝에 탄생한 이 훌륭한 앨범을 다 듣고 나면, 저절로 그의 미래를 응원할 수 밖에 없다. 만약 올해에 발견한 아티스트 중 한 명만 프로모션 할 수 있다면, 주저 없이 이 앨범을 발매한 Nilufer Yanya를 꼽고 싶다. 꼭 트랙 순서대로 들어보길 추천한다. 

6. Weyes Blood - Titanic Rising

왜 발매 당시에는 그냥 지나쳤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내 자신을 이해할 수 없지만, 어쨌든 올해 음악 씬을 논할 때 이 음반을 빠뜨린다면 굉장히 섭섭할 것 같다. 포크에 기반을 둔 기타 사운드와 멜로디는 포근하면서도 유려하고, Natalie Mering의 벨벳 같은 보컬은 전에 없던 포근함을 그려낸다. 이번 앨범을 두고 팬들은 Joni Mitchell이나 Carpenters 같은 과거의 뮤지션들을 떠올리기도 했는데, 한 번쯤은 꿈꾸었던 향수를 자극하는 앨범이라고 해석해도 무방할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힘들었던 시기에 가장 큰 힘을 주었던 앨범이라, 감사함을 표현하고 싶다.

7. Lizzo - Cuz I Love You

드디어 Lizzo의 전성기가 찾아왔다. 사실 그건 펑키한 싱글 <Juice>를 발표했을 때부터 쉽게 예상할 수 있었지만, 막상 현실이 되고 나니 기대 이상으로 반가운 일이 되었다. 꺼지지 않는 열정을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저력은 <Tempo>와 <Exactly How I Feel> 같은 콜라보레이션 트랙에서도, 비교적 차분한 톤으로 마지막을 장식하는 <Lingerie>에서도, 디럭스 버전에 추가된 <Water Me>에서도 살아숨쉬고 있다. 이런 활기찬 에너지만으로도 벅차오르는데, 그런 에너지를 전달하는 사람이 Lizzo라서 더욱 신나게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다. 

8. Yuna - Rouge

Yuna의 앨범도 올해 놓쳐서는 안 될 수작이다. 말레이시아 출신의 싱어송라이터 Yuna는 이전의 작품들을 발판 삼아 이번 앨범에서 또 한 번의 도약을 이루어낸다. 시티팝을 연상시키는 그루브와 Tyler the Creator, 박재범 등 여러 피쳐링진을 활용하여 깔끔하게 정제된 R&B 팝을 구사하는 이번 앨범은 이제 그가 세계의 더 많은 음악팬들과 만날 준비가 되었음을 증명한다. 특히 여름밤의 드라이브를 음악으로 구현한 듯한 <Pink Youth>는 올해 절대로 놓쳐서는 안될 필청 트랙.

9. Charli XCX - Charli

앞서 소개한 Yuna의 앨범과 함께 올해의 팝으로 꼽을 수 있는 작품. Sky ferreira, Lizzo, Christine and the Queens, Yaeji처럼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쟁쟁한 아티스트와의 콜라보레이션이 돋보이는데, Charli 본연의 색깔로 각 아티스트들의 특징을 재해석한 절묘한 밸런스는 교과서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에 그치지 않고 <White Mercedes>와 같이, 순전히 자신의 목소리만으로 채워낸 곡들에서도 탁월한 흡인력을 발휘한다는 점에서, 그가 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뮤지션이 될 수 있었는지 단박에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0. Lim Kim - Generasian

최근 음악 씬에서는 Yaeji나 Japanese Breakfast 등, 글로벌한 사회에서의 아시아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노래하는 아티스트들이 급부상했었는데, Lim Kim이라는 이름으로 새로 태어난 김예림 역시 그 대세에 합류할 자격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이전의 한국 활동에서는 상상할 수 없던 랩핑과 실험적인 사운드, 파격적인 퍼포먼스는 음악의 차원을 넘어 사회적인 선언문으로서 기능한다. 여성 판소리 합창단과 함께한 <민족요(Entrance)>와 제목처럼 빠져들게 하는 <Yo-Soul>이 한국 문화라는 뿌리를 노래한다면, <Yellow>와 <Digital Khan>은 이를 가지처럼 뻗쳐 아시아 여성 전체를 아우르는 외침을 던진다. 그 외침에 공명하는 것은 이제 팬들의 몫일 터, 뜨거운 응원을 보내주자. 

11. FKA Twigs - Magdalene

대범한 도전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으레 높은 기대치를 품기 마련인데, 그런 기대치를 매번 경신하는 아티스트 중 하나가 바로 FKA Twigs이다. 성경에 등장하는 마리아 막달레나에서 영감을 얻은 이 앨범은, 자신의 개인적인 아픔을 다루면서도 자신을 여성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sad day>부터 <fallen alien>까지 이어지는 파괴적인 긴장감은 물론, 미니멀한 편곡으로 보컬을 한껏 강조한 <cellophane>으로 끝을 맺으면서도 어떤 의미를 끝까지 탐구하려는 자세를 일관되게 유지하면서, FKA Twigs는 우리가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방향으로 발을 내딛었다. 이러면 기대치를 더 높여도 되지 않을까. 

12. Courtney Barnett - MTV Unplugged

<Useless Nameless>의 피아노 버전은 어떤 느낌일까? 신곡을 공개하지 않았음에도 Courtney Barnett의 새로운 매력을 만나볼 수 있는 라이브 앨범이다. 살짝 맛볼 수 있었던 어쿠스틱 사운드와의 조화가 대표곡을 라이브로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극대화되고, 곳곳에 자리잡은 커버곡들도 이를 다시 한 번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지난 여름 무대 위에서 전자 기타를 들쳐매고 락앤롤 스피릿을 불태우는 모습으로만 Courtney Barnett을 기억했다면, 이 앨범을 통해 그 이상의 내공과 역량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13. 백예린 - Every Letter I Sent You

케이팝에서 팬덤을 막론하고 가장 많은 사람이 기다리던 앨범이 올해 드디어 빛을 봤다. 원 소속사와의 계약 종료만을 기다려던 것처럼 빠르게 발매된 이 앨범은 제목과 같이 긴 시간 동안 꾹꾹 눌러담은 것 같은 애정과 감정들로 가득하다. 그런 추억들이 2CD에 나누어 담겨야할 정도로 방대하지만 전혀 지루하거나 부담스럽지 않다는 점에서 또 한 번 특유의 섬세함과 오랜 고민을 엿볼 수도 있다. 특히 많은 사랑을 받았던 <Square(2017)>는 음원차트 1위의 영광을 안기도 했는데, 음원 차트 순위 선정 방식을 놓고 여러 말들이 오가는 와중에 더 뜻깊은 의미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그 모든 논란을 떠나서, 음악이 발휘하는 힘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본다. 

14. Red Velvet - The ReVe Festival 'Finale'

3부작으로 나누어진 프로젝트는 케이팝 아이돌들이 흔하게 구사했던 전략 중 하나지만, 레드벨벳이 이를 활용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발매 역순으로 흐르는 트랙리스트, 축제의 마무리라기보단 또 다른 방향으로 접어드는 표제곡 <Psycho>, 앞서 공개된 서늘한 티저 이미지. 어느 하나 통념과 맞진 않지만 레드벨벳이 그간 보여주었던 독특한 음악 세계에서는 굉장한 설득력을 지닌다. 축제의 마지막날이란, 레드벨벳에게는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기 전 제 실력을 테스트해볼 수 있는 장으로서 기능했고, 팬들에게는 거꾸로 흐르는 시간 속에서 추억과 함께 각 트랙들을 새롭게 엮어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마무리될 무렵 등장하는 스페셜 트랙 <La Rouge>은,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가고 나타나는 쿠키 영상처럼 끝나지 않을 새로운 여정을 예고한다. 그것도 더 재밌는 여정이라는 걸.

(참고로, <Psycho>는 뮤직비디오 버전과 앨범에 수록된 버전이 서로 다르다! 비교하면서 듣는 재미도 챙겨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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