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Music

2019년 상반기 결산 - 트랙

싱글로 발표되거나, 수록된 앨범에서 유독 두각을 드러내는 곡들이 많았던 올 상반기여서 따로 트랙 모음을 해봄

1. Lizzo - Juice

어디선가 들어봄직한 평키한 흥과 그루브, Lizzo의 보컬이 감칠맛을 더하는 이 곡이 유독 빛나는 것은 그만큼 강렬한 자기애의 메시지가 전달되기 때문일 것이다. 팻셰이밍과 여성혐오, 인종차별은 많은 사람들을 분노케 하지만 그런 세상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자기애라는 응원도 필요한 법이지 않을까. 그것도 기득권이 아닌 같은 처지의 동지로부터라면, 그 흔하디 흔한 "Love yourself"의 메시지와는 더 특별하고 반가운 연대로 다가오리라 믿는다.

 

2. Hot Chip - Hungry Child

Hot Chip은 여전히 흥미롭고 다채로운 밴드이다. 무엇보다도 본인들의 역량을 최대한으로 쏟되, 그것이 너무 과하거나 나르시스트처럼 비춰지지 않게 적절히 다룰 줄 아는 미덕이 있는 밴드로, 올해 발매된 앨범도 밴드 나름대로 그어놓은 듯한 선을 잘 지키고 있다. 싱글 컷된 <Hungry Child>도 자칫하면 뻔한 하우스 뮤직처럼 들릴 법한 비트를 수려한 신디와 시크한 보컬로 멋있게 치장했다. 화룡점정은 바로 뮤직비디오. 한 커플에게 찾아온 이 음악은 관계에 대한 다양한 질문을 던지는 매개체로 작용하면서, 우리 삶에서 음악이 가진 의미를 한 번쯤 되돌아 보게 한다. 

 

3. Billie Eilish - Bury a Friend

수많은 10대들을 이끄는 아이콘 Billie Eilish의 음악과 세계관을 두고 혹자는 "중2병"을 언급하기도 하지만, 사실 그 한 단어로 일축해버리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흘려보내게 된다. 악몽과 악당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읊조리는 듯한 보컬로 서서히 긴장감을 자극하는 전개 방식을 구사하는 게 10대 여성 솔로 아티스트라면, 조금 다른 의미를 갖게 되지 않을까. 사실 호러와 스릴러에서 여성 주인공을 내세운 것은 그리 새로운 점은 아니기에 Billie의 세계관이 진부하다 생각할 수 있겠지만, 고통과 아픔을 대리하는 객체에서 직접 그 세계를 다스리고 이끌어가는 주체로서의 히로인에게는 10대를 넘어 전 세대에게 던지는 어떤 메시지가 담겨 있을 것이다.

 

4. The Black Keys - Lo/Hi

다양한 장르를 접목시켜 새로운 것을 찾기 바쁜 요즘 대중음악계에서 The Black Keys는 반대로 정공법을 택한다. 그들의 음악에서는 마치 오랜 세월 딱 한 가지 메뉴만 고집하며 이름을 알리는 오랜 맛집 같은 느낌이 난다. 앨범 <Let's Rock>에서 처음으로 싱글컷된 Lo/Hi 는 그런 밴드의 정신을 그대로 녹여낸 트랙이다. 새로운 미래가 과거를 발판으로 삼는 것처럼, 이 트랙과 이 앨범도 다 죽어가는 락 씬의 "오래된 미래"로 남아있을 것 같다.

 

5. The Chemical Brothers - Eve of Destruction

기계음 섞인 목소리로 "파괴의 전야"를 알리는 이 트랙은 The Chemical Brothers가 펼칠 새로운 세계를 여는 서막 역할을 한다. "그래서 뭘 파괴한다는 거야?"라는 질문이 절로 나올 정도로 흥미로운 요소들이 가득한데, 뭐가 됐든 잠시 머리를 비우고 흥겹게 춤을 출 수 있다는 점에서 이미 댄스 음악의 조건을 충족하고도 남는다. 난데 없이 튀어 나오는 일본어 랩이 조금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8-90년대 일본 특촬물의 영향을 받은 듯한 뮤직비디오를 보면 어느 정도 수긍이 되기도. 가장 트렌디한 뮤지션 중 하나인 AURORA의 등장은 또 다른 즐거움 중 하나.

 

6. 이달의 소녀(LOOΠΔ) - Butterfly

케이팝 팬덤이 어디까지 팬덤의 특성을 파악하고 그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려 하는지는 항상 의문이 들지만 이달의 소녀의 Butterfly는 케이팝 씬에서 만난 가장 훌륭한 피드백이다. 트위터와 SNS에서 팬덤이 끊임없이 제기하던 이슈들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인 것 같이, 이 몽환적인 트랙은 팬들이 추구하는 어떤 이상향을 구현하려 한다. 상승 기류를 그려낸듯한 메인 멜로디가 따라가는 길은 뮤직비디오가 그려낸 것과 같은 유토피아일지, 아니면 잠시뿐일 전략에 불과할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일단은 이 시도에 박수를 보내는 것만으로도 긍정적인 효과를 유도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7. サカナクション(sakanaction) - 忘れられないの (잊을 수 없어)

전세계를 휩쓴 일본 시티팝 열풍에 본토 밴드들도 기꺼이 동참하는 요즘, 사카낙션이 내놓은 답은 단순하다. 그런 느낌을 낼 수 있는 리듬과 사운드를 찾아서 그저 즐겁게 녹여내는 것. 오랜만에 발매하는 싱글인 만큼 더 새로운 것을 바라는 팬들도 있었겠지만 이런 명쾌함과 흥만큼 사카낙션을 잘 표현할 수 있는 것도 없을 것이다. 아니, 다른 건 다 차치하더라도 이 곡의 베이스 라인을 사랑하지 않을 리스너가 있을까. 베이시스트 쿠사카리 아미의 여름 햇살을 만끽하는 베이스 리프를 이 여름이 가기 전에 꼭 즐겨보시길.

 

8. Yonyon, 一十三十一(Hitomitoi) - Overflow

Yonyon은 한국과 일본의 라이징 스타들과 함께 협업하는 프로젝트를 통해 자신만의 색깔을 다양한 방면으로 실험하고 있는 아티스트로, 이미 SIRUP이나 무카이 타이치(井太一)와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그 이름을 알려왔다. 히토미토이와 함께한 트랙 <Overflow>는 그 중 단연 독보적인 매력을 지녔는데, 한국어/일어/영어 3개국어로 쓰인 가사가 주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깔끔한 하우스풍 비트로 빚어낸 상쾌한 트랙이다. 계속 되는 싱글 발매로 팬들의 기대감을 충족함과 동시에 호기심도 커지게 하는 이 아티스트의 다음은 또 어떠할지, 항상 그 다음을 기대하게 하는 아티스트를 만나서 반갑다.

 

9. 欅坂46(keyakizaka46) - 黒い羊(검은 양) 

"웃지 않는 아이돌"로 불리며 흔히 생각하는 일본 여성 아이돌의 전형을 깨는 케야키자카46의 올해 첫 싱글은, 조금 진부하게 들릴지는 몰라도, 충격 그 자체이다. 끊임없이 사회와 인간관계에 물음을 던지고 도전하는 곡으로 주목받던 그들은 <검은 양>에서 그동안의 행보를 회고하는 듯한 화자를 내세우며 이제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화자는 "나만 없어지면 되는 거지"( 僕だけがいなくなればいいんだ), "모두 내 탓이야"(全部 僕のせいだ) 라며 자신이 느낀 무력감과 고통, 슬픔을 가감없이 드러내지만, 그런 체념을 후반부에서는 "하얀 양 따위는 절대 되고 싶지 않아"(白い羊なんて僕は絶対になりたくないんだ)라며 승화시킴으로서 변함없이 갈등에 맞서겠다는 의지를 다시금 불태운다. 마치 뮤지컬의 클라이막스를 담아낸 듯한 영웅적인 내러티브가 피아노와 스트링 사운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약 5분 간의 러닝 타임에 극적으로 녹아들어있다. 

한일을 막론하고 아이돌 계에서, 사회 비판적으로 정의를 말하는 메시지는 주로 남성의 목소리를 통해 전해지곤 했다. 약자에 대한 공감 없이 갈등을 뚫고 전진하라고만 외치는 남성의 목소리가 현재 시점에서 과연 얼마나 유효할까? <검은 양>은 그런 진부함에 대한 비판이자 대안이다.

'Music'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9 올해의 앨범  (0) 2020.01.01
2019년 상반기 결산 - 앨범  (2) 2019.07.05
2018년 상반기 결산  (0) 2018.07.01
2017년 올해의 앨범  (0) 2017.12.25
2017년 상반기 결산  (0) 2017.0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