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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

Fuji Rock Festival '19 - Day 1

- 올해 후지에서 본 공연들에 대한 짧은 후기를 백업. 예저녁에 인스타에 올렸던 글과 거의 동일합니다.

- 사진은 모두 아이폰8로 찍었고, 날씨가 좋았던 적이 거의 없어서 퀄은 그닥입니다. 너무 기대하지 마세요<- 

- 일자별로 나누어서 업로드합니다

 

1. Anne-Marie

이번 후지록에서 가장 행복한 에너지가 넘쳤던 무대를 꼽자면 단연 앤마리. 듣던 대로 라이브 실력도 수준급이었고, 무대 매너도 좋았고, 무엇보다도 무대 위에서는 그 누구보다도 행복해하는 사람이라는 게 느껴져서 보는 내내 흐뭇했다. 이런 사람에게 그런 만행을 저지른 페이크버진은 정말 천벌 받아야 한다. 이런 사람에게서 어떻게 무대를 빼앗을 생각을 해..... 언니 고소해<-

Perfect를 부르기 전 틀어주는 VCR에서, 인종과 젠더를 넘어선 다양한 사람들(그 중에는 에드 시런도 있었다!)은 Perfect라는 단어를 각각 어떻게 정의하는지 설명한다. 아마 관객들도 다 자기 나름의 정의를 갖고 있었겠지. 그 모든 차이와 다름을 보듬어 안으려는 앤 마리의 따뜻한 마음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2. Janelle Monáe

후지록 라인업 발표에서 자넬 모네의 이름을 발견한 순간 "올해는 여기구나!" 하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너무나도 소중하고 뜻 깊은 앨범을 발표했던데다 팬심을 넘어 이제는 존경하는 마음을 품게 된 아티스트인만큼 이 기회를 절대 놓쳐서는 안된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은 역시 틀리지 않았다. 이름만으로도 페스티벌의 퀄리티를 보장하는 그런 사람이 바로 자넬 모네입니다.

공연을 보면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던 거 같다. 앨범과 음원에서도 돋보이던 펑키하고 신나는 리듬 속에서 날카롭게 돋아나는 사회적 메시지가 라이브에서는 어느 때보다도 강렬하게 들렸다. 하지만 그 메시지는 분노를 넘어 평화와 화합, 그리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에너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그 어떤 팝스타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쇼맨십과 퍼포먼스, 잊지 못할 이 순간을 함께 추억하고 행복한 메모리로 남기자는 따뜻한 말, 그리고 여성과 LGBTQI+ 커뮤니티와 이민자와 유색인종과 노동자 계급에의 연대를 표명하던 연설까지(그렇게 대놓고 트럼프를 탄핵하자고 말씀하실 줄이야 너무 멋있었어요), empowering의 정의를 아주 제대로 체험하고 온 공연이었다.  자넬 모네 당신은 저의 대통령이십니다🙇🏻‍♀️🙇🏻‍♀️🙇🏻‍♀️🙇🏻‍♀️🙇🏻‍♀️

 

3. Ellegarden

사실 원래 계획은 Toro Y Moi를 보러 가는 거였는데 공연장인 레드 마퀴까지 가는 게 힘들어서(...) 그냥 그린에 머물기로 했고 그렇게 예정에 없던 엘레가든을 보게 되었는데

아니 제목도 전혀 기억나지 않는 곡을 난 왜 따라부르고 있는 것인가....순간 중고등학생 시절로 타임 슬립한 신묘한 경험을 했다. 그 느낌은 마지막곡인 Make a Wish에서 절정을 찍었고, 진심 마음만은 닭장에서 부딪히며 놀고 싶었지만...아직 몸이 성치 않은 관계로 멀찍이서 리듬만 탈 수 밖에 없었다😢

활동 휴지 11년만의 첫 공연인 만큼 칼을 갈고 온 일본 관객들을 아주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진심 이 날만을 기다린 것마냥 몸이 부서져라 놀더라. 세번째 곡에서 벌써 생수병 날아다니고 크라우드 서핑하는 사람을 요 몇 년 간 본 공연 다 합친 것보다 더 많이 본 것 같다ㅋㅋㅋㅋ1일차 티켓이 매진될 수 있었던 건 엘레가든 때문이 아닐까. 하긴, 추억 속의 밴드가 아직도 건재하다는 것을 증명해보이는 이번 복귀 무대였으니 팬들의 열정이 백분 이해된다. 다음에 볼 땐 Marry Me도 들려주세요🙏

 

4. Mitski

Mitski의 공연을 한 번 더 보기로 결심했던 건 내한 공연이 너무나 열악한 환경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었다. 좁디 좁은 무대에서 조악한 음향에도 열연을 펼쳤던 미츠키를 더 넓고 쾌적한 곳에서 본다면 제대로 즐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고 그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확실히 롤링홀은 미츠키 같은 뛰어난 뮤지션을 세우기엔 너무나 초라했던 곳이었다. 레드 마퀴도 그리 큰 장소는 아니었지만, 그때보다도 더 자유롭게 뛰어놀고 자유분방하게 공연을 펼치는 미츠키를 보니 속이 다 시원해질 정도였다. 테이블과 의자 같은 소품을 다양하게 활용하고 무대를 종횡무진 뛰어다니며 감정을 가감없이 표현하는 미츠키를 보니, 내한 당시 조금은 정적인 공연을 한다고 느꼈던 것도 사실이 아니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고 왠지 미안해졌다😢

내한 때와 같이 일본에서도 Nobody에서 가장 관객 호응이 좋아서, 이 곡의 어필 포인트가 무엇인지 곱씹게 된다. 귀에 착 감기는 멜로디 때문일까, 외로움을 섬세하게 다룬 가사 때문일까,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5. The Chemical Brothers

The Chemical Brothers가 헤드라이너였던 이 날, 누군가 뜬금없이 "Hey girl!" 하고 소리 치면 일면식도 없는 주변 사람들이 알아서 "Hey boy, superstar dj, here we go!" 를 주고받는 풍경을 종종 볼 수 있었다. 다들 얼마나 그들의 무대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공연을 보러가는 건 음악을 체험하는 경험을 선사한다고 생각하는데, 켐브로는 그에 가장 적합한 무대를 선보이는 뮤지션이다. 이는 사람들을 열광하게 하는 음악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건 영상과 조명 효과이지 않을까. 백드롭은 무대 배경을 채워주는 역할을 넘어 마치 3D영화 같이 관객의 세계 너머까지 아우르고 다양한 조명들은 쉴새없이 깜빡이며 황홀경을 연출한다. 이에 더해 Saturation에서 영상으로 등장하던 공들이 진짜로 관객의 머리 위를 날아다니거나, 영상에서 튀어나온 듯한 거대 로봇이 무대 뒷편에 등장하는 등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흡인력이 발휘되기도 한다.

그 중 최애 파트를 꼽으라면 Swoon의 후반부에 Star Guitar의 비트가 얹어지며 자연스레 넘어가는 부분. 서로 다른 곡들이 녹아들듯 영롱하게 빛나는 실루엣들이 하나로 겹쳐지고 다시 푸른 나비로 피어나는 영상은 아름다움보다 더 한 아름다움이다. 혹시 나중에 켐브로를 보러 간다면, Swoon이 나올 순간만을 기다리셔도 좋습니다.

 

6. Thom Yorke Tomorrow's Modern Boxes

후지록 첫날의 교훈: 그린 스테이지와 화이트 스테이지 사이의 거리는 꽤 멀다...만약 대인원이 동시에 이동하고 비까지 온다면? 더 멀게 느껴짐

톰요크 솔로는 잘 안 들었지만 혹시 서스페리아 OST를 하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에 켐브로 공연이 끝나고 부랴부랴 움직였는데 사람들 마음이 다 똑같은지 화이트로 가는 길목이 너무 붐볐고 비까지 내리는 바람에 생각보다 너무 늦게 도착해버렸다😢 이미 화이트는 사람들로 넘쳐났고 공연도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렇게 한 4곡 정도 듣고 나니 공연이 끝나버렸고 Suspirium을 앞에 해버린 건가! 하고 아쉬운 마음으로 부랴부랴 셋리스트를 검색하던 그 때, 갑자기 어두워진 무대로 톰이 등장하더니 원모어송을 하겠댄다. 그리고 이어서 들려오는 피아노 선율은 바로 그 Suspiriumㅠㅠㅠㅠㅠㅠ나가려던 발길을 급하게 돌려 다시 화이트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이 날 이후 한국에서 단독공연을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후기가 다들 좋은 것으로 보아 후지록 공연도 좋았겠거니...하고 있다. 하지만 빗소리를 벗삼아 라이브로 들었던 Suspirium 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