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음악 이외의 이야기를 쓰게 될 줄은 몰랐고 그래서 많이 어색하긴 합니다만, 이제는 해야 할 이야기인 것 같아서 키보드를 두드려봅니다. 이 이야기는 저의 삶을 관통하는 이야기이고, 다른 분의 삶도 관통하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모와 자식, 특히 아버지와 자식에 관한 이야기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꽤 긴 글이 될 것 같다는 점, 먼저 양해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희 아버지는 꽤 엄격합니다. 꼼꼼하다고 할 수도 있고요. 그런데 사실 이건 좋게 말하자면 그렇다는 말이지, 가감없이 말하자면, 감정기복이 심하고 성격이 좋은 편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예를 들자면, 가족의 집안일 실력을 믿지 못해 다섯시간이고 여섯시간이고 온 집안 청소를 본인이 다 합니다. 이 과정에서 다른 가족구성원이 개입을 한다면, 굉장히 화를 냅니다. 그러나 그러지 않을 때도 화를 내곤 합니다. 자기가 이렇게 하는 동안 나머지는 대체 뭘 하고 있는 거냐면서.



현재 3주째 저와 냉전 중인 일도 이와 비슷한 케이스입니다. 저는 가끔 아버지의 부탁으로 아버지 회사일을 도와드리곤 합니다. 대부분은 간단하고 루틴한, 사소한 업무라서 그리 많은 시간을 빼앗기지는 않거든요. 그날도 그랬습니다. 매번 문의하던 일을 이번에도 했었죠. 그러나 결과물을 보고 아버지는 대노하셨습니다. 이번에는 그렇게 하는게 아니었다는 겁니다. 어쩐지, 중간에 한 단계가 조금 이상하긴 했었지만, 작은 에러라고 여기고 넘겼던 저의 판단이 실수였던 거죠. 그래서 다시 하겠다고, 다른 조치 방법을 말씀드렸습니다만, 아버지의 화는 오히려 크게 번져만 갔습니다. 얼마전에 트위터 상에서, 부모들은 자식들의 뭔가가 마음에 안 들면 평소에 마음에 들지 않았었던 다른 무언가를 억지로 갖다대어 말도 안되는 상관관계를 만들어낸다고 하는 트윗이 돌았는데, 딱 그런 케이스였습니다. 제가 음악을 듣고 음반을 모으고 글을 쓰는데 정신이 팔려 이런 일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고, 회사에서도 이렇게 일하냐는 것이었습니다. 기존과 다른 방식의 일이었다면 미리 말을 해주면 좋았을텐데. 조금 너무하고 억울하다고도 생각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저는 제게 귀책사유가 있기에 그 비판을 곧이곧대로 다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며칠 뒤, 아버지의 말을 듣고서 저는 아버지를 분노케 한 이유가 저의 잘못에만 있는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그 일을 다시 처리하는 과정이 얼마나 짜증나는지를 성토하시면서 이렇게 소리치셨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새파란 직원놈한테 내가 잘못했다고 고개를 숙여야 한단 말야!”


아버지는 회사에서 꽤 높은 직급이십니다. 이 회사를 오래 다니셨죠. 그리고 당연히 그 회사는 말단 사원부터 회장까지, 다양한 직급의 직원들이 모여 운영하는 곳입니다. 그 회사에서는 직급에 상관없이 모두가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을 하겠죠. 그런데 그 과정에서, 자기보다 한참 나이가 어리고 직급이 낮고 연차가 적은 직원에게 실수를 고백하고 부탁을 하는 것이, 아버지를 그렇게 화나게 했던 메인 팩터 중 하나라니. 저는 너무나도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함께 일하는 직원을 자신보다 지위가 낮다는 이유로 그렇게 하대한다는 것에서 한 번, 그런 사람에게 부탁을 하는 것을 그렇게 화가 날 정도로 수치스러워한다는 것에 또 한 번. 그러면서, 아버지가 부탁을 할 그 직원 나아가 아버지와 함께 일하는 다른 직원들의 회사생활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이런 권위적인 사람 앞에서, 그런 감정 기복으로 일하는 사람에게서, 얼마나 경직된 채 생활을 할까요. 저는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가족 내의 문제라고만 생각하고 감수하고 있었지만, 그게 결코 가족 내에만 머무르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습니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저의 실수로 인해 권위가 꺾일 자신의 모습이 그 무엇보다도 견디기 싫었던 것입니다. 그건 ‘무시당한다’라는 것과 연결되고요. 실제도 저 말 다음에 그 말을 했습니다. 자식이 아버지를 사회에서 무시당하게 만들었다고요. 그리고 제가 아버지를 무시했다고, 한 두 번이 아니라고 합니다.



생각해보면 ‘무시당한다’라는 말은 아버지급의 남성들이 자주 토로하는 억울함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남성가해자/피의자를 다룬 기사 꼭지에서 ‘왜 날 무시해’라는 문구를 종종 보았던 기억도 있네요. 그러니 자연스레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대체 그 ‘무시당한다’라는 감정은 무엇이고, 그것이 왜 우리 아버지를 포함한 많은 아버지들을 분노케 하는지에 대해서 고민을 해보았습니다.


‘무시’라는 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았습니다. ‘1.사물의 존재 의의나 가치를 알아주지 아니함. 2. 사람을 깔보거나 업신여김’이라고 나와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무시’라는 말로 표현되는 상황들이 꼭 이런 정의에 부합하지만은 않는 것 같습니다. 살다보면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부탁할 때도 있고, 자신을 조금 접고 들어가야하는 상황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주장이 잘 먹히지 않거나 마음먹은 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을 때가 있죠. 그런데 그런 상황조차 ‘무시’라고 명명되는 경우가 종종 있지 않나 싶습니다. 실제로 내 생각대로 상대방이 움직여주지 않는 건 상대방이 날 하찮게 여겨서라기보다는 다른 요인에 의한 것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우스개소리로 저는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는 세 가지는 주량, 타자실력, 사람들에 대한 불신’이라 말하곤 하는데, 제가 말하는 불신이란, 사람들이 꼭 내가 생각한대로만 움직이지도 않고 내가 의도한 것과 전혀 다른 의도를 가지기도 한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정말 단순히 실수를 할 수도 있고, 서로 커뮤니케이션이 잘못될 수도 있고, 반대로 제가 상대방을 잘못 이해해서 그렇게 되기도 합니다. 만약 무언가가 그래서 잘못됐다고 하면, 다시 하면 될 일입니다.이건 제가 다니는 회사와 동료들의 모토이기도 합니다. 루틴한 업무가 적고 매번 다르게 일어나는 이슈와 프로젝트에 빠르게 대응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지 몰라도, 1안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지한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원인 제공자를 힐난하는 것이 아닌 2안의 모색과 재빠른 실행이라고 저는 배웠습니다. 그렇지만 2안을 모색하기보단 이미 지나가버린 일, 그리고 그 일의 귀책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가리는 것, 그것이 바로 ‘무시당했다’라는 감정에 수반되는 행동인 건 아닐까요. 왜냐면 자신이 무시당했다는 건 대안을 수행한다고 해서 해소될 수 있는 감정은 아닐테니까요.



실제로 ‘무시당했다’라고 여기는 감정은, 정말 그 사람이 당신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그 상황에 상상을 덧대어 한없이 바닥으로 추락한 자신의 모습을 상정한 결과 빚어지는 것은 아닐까요? 사회가 부여하는 아버지라는, 또는 상급자라는 권위가 지켜지지 않을 것을 우려하여, 미리 방어기제를 작동시키는 것은 아닐까요?



그러고 보니, 아까 사전을 찾아봐서 말인데, ‘사물의 존재 의의나 가치를 알아주지 아니함 / 사람을 깔보거나 업신여김’이란 정의에 부합하는 경험은 저에게도 꽤 있었던 거 같습니다. 가족들 앞에서 처음으로 피아노 연주를 선보였을 때, 아버지는 제게 마지막 마디만 좋았다고 하셨고, 시험을 망쳤을 땐 첫끝발이 개끝발이라는 말을 달고 사셨습니다. 나중에 가족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제가 아주 어렸을 때 자폐증 의심 증상을 보여 의사가 진료를 권유했으나 아버지로부터 거절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게 중요한게 아니었다고 했었답니다. 그림일기에는 종종 기다란 뭔가를 들고 있는 아버지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저의 모습이 그려져있곤 했습니다. 요즘도 뭔가 제안을 드리거나 잘못 알고 있는 정보를 정정하면, 거기에도 크게 화를 내시곤 합니다. 그리고 저는 당신께 필요 없는 존재라고 말을 던지고 가십니다.



무시당하는 게 싫은 아버지는, 어쩌면 자식을 포함한 다른 대상을 무시하면서 무시당하지 않을 자존심을 키우고 있던 건 아닌지 생각하게 됩니다.



저는 저와 우리 가족이 겪는, 또는 어쩌면 아버지와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이 겪을 일들이 더이상 일어나지 않길 바랍니다. 이건 너무 늦은 깨달음이라 이미 때가 한참 지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희 팀장님과 파트장님이 항상 말씀하시는 것처럼, 잘못된 걸 알았으면 이제라도 고쳐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친구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어렵사리 꺼내면, 의아해한다기보다는 공감의 언행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미 여기에서 이 문제가 가정이란 울타리를 넘어선다는 것이 증명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해결책과 대안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솔직히 잘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제가 아버지가 될, 아버지가 된, 또는 아버지와 함께 살아가는 자녀들(특히 여성들)을 위해 글을 쓰게 된 이유입니다. 많은 분들이 같이 고민하고, 생각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by moonrises 2018.07.29 2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