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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기 발매작 중 좋아했던 앨범들을 백업.

 

1. Sharon Van Etten - Remind Me Tomorrow

Sharon Van Etten의 음악은 마치 테라리움 같다. 그의 음악에서 우리는 행복했던 과거와 후회의 순간, 다가올 미래를 동시에 맛볼 수 있는데, 동시에 우리를 둘러싼 불안정하고 예측할 수 없는 세계에서 어떤 안정감을 느끼기도 한다. <Comeback Kid>, <Seventeen>의 폭발하는 사운드와 <No One's Easy to Love>, <Jupiter 4>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오가는 가운데, 마지막 트랙을 지나고 나면 귓가에 남아있는 온기가 내 자신을 다독이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 위안이 있어서 우리는 자신의 세계를 온전히 지키고, 또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이 아닐까.

 

2. Lizzo - Cuz I Love You

아마도 2019년 발매작 중 가장 활기찬 에너지로 가득한 앨범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모두의 어깨를 절로 들썩이게 했던 레트로 펑키 사운드 <Juice>, Missy Elliot과의 눈부신 콜라보가 인상적인 <Tempo>, 가창력을 제대로 뽐낸 <Crybaby>까지 기분좋게 들을 수 있는 곡들로 가득한 이 앨범은 우리 가슴 깊은 곳에 자리잡던 작은 용기를 끌어올린다. 직설적인 메시지로 많은 여성들에게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아티스트인만큼, 그 목소리가 더 많은 이에게 가닿기를 바란다. 

 

3. Nilüfer Yanya - Miss Universe

주목받는 신인에게 흔히 붙는 "당돌한", "겁없는"이라는 수식어는 이제 진부해진지 오래지만, Nilüfer Yanya라면 전혀 이야기가 달라진다. 첫 정규앨범을 준비하며 이전에 발매된 EP에서도 전혀 공개되지 않았던 신곡들을 무려 17곡이나 담아낸다는 것은 신인 아티스트가 여간 쉽게 내릴 수 있는 결정이 아니다. Miss Universe는 그런 과감한 결정을 밀어붙인 원동력이었을 타오르는 열정이 느껴지는 뜨거운 앨범이다. 특히 <In Your Head>를 듣지 않고 2019년을 넘겨버린다면 엄청난 후회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4. The Comet is Coming - Trust in the Lifeforce of the Deep Mystery

첫 앨범 Channel the Spirits로 머큐리 프라이즈 후보에 오르면서 주목받기 시작한 The Comet is Coming은 데뷔작의 성공이 절대 운에 기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두 번째 앨범에서 증명한다. 바쁘게 쪼개지는 비트를 자유로이 휘젓는 색소폰은 전작에 비해 재즈의 색채를 더욱 진하게 드러내며, 동시에 로큰롤보다 짜릿하고 묵직한 일격을 날린다. 드럼과 색소폰의 대결에 절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Timewave Zero>, 일렉트로니카적 요소가 가장 진하게 녹아들어간 <Summon the Fire> 등, SF영화의 장면들을 음악으로 구현한 듯한 이들의 대장정을 계속해서 따라가고 싶다.

 

5. Solange - When I Get Home

Solange의 주술은 이번 앨범에서도 이어진다. A Seat at the Table에서 선보인 바 있는 나른한 사운드와 강렬한 메시지의 조합은 이번 작품을 통해 한 차례 더 승화된다. 그 사운드는 마치 향수처럼, 희미해보여도 어느새 공간을 가득 메워 마음대로 빠져나갈 수 없도록 우리의 귀를 사로잡는다. <Almeda>에서 "Brown", "Black"이란 단어를 여러 번 반복하는 것은 단순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강력한 주술처럼 들리기도 한다. 부드러움 아래에 감춰낸 날카로움을 서서히 자각하게 하는 것, 그것이 Solange만이 가진 세상에 맞서는 무기이자 그가 고발하고 싶어하는 이 사회의 모순일 것이다. 

 

6. Beyoncé - Homecoming: The Live Album

전세계를 들썩이게 했던 바로 그 퍼포먼스가 다시 재현된다. 동명의 라이브 필름을 함께 공개하며, Beyoncé는 이 "재현"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더 넓게 확장시킨다. 특정한 컨셉 아래에서 재조합된 디스코그라피, 그것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무대, 그 퍼포먼스를 준비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플래시백, 이 모든 것을 현재 시점에서 회상하는 Beyoncé의 나레이션과 목소리. 이 모든 것이 한데 어울린 Homecoming은 과거에 대한 기록에 머물지 않는다. Homecoming은 가수 Beyoncé가 흑인 기혼 여성인 Beyoncé로서 사회에 던지는 외침을 새롭게 구현해낸 결과물이며, 이제는 그 목소리에 우리가 움직이기 시작할 차례다.

 

7. Better Oblivion Community Center - Better Oblivion Community Center

2018년에 boygenius가 있었다면 2019년에는 Better Oblivion Community Center가 있다. Better Oblivion Community Center는 boygenius를 통해 콜라보레이션 프로젝트의 이상을 구현해낸 Phoebe Bridgers가 준비한 새로운 프로젝트로, 본인의 주장르인 포크와 어쿠스틱을 보다 심도있게 다룬다. 물흐르는 듯이 자연스레 흘러가는 어쿠스틱 기타 사운드 위로 내려앉는 하모니만큼 듣는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건 또 없을 것이다. 왠지 모를 걱정과 불안감에 쉽게 잠들지 못하는 밤에는 이 앨범을 스스로에게 처방하자.

 

8. あいみょん(아이묭) - 瞬間的シックスセンス(순간적 식스센스)

일본의 스트리밍 채널은 물론, 온/오프라인 차트까지 점령한 아이묭(あいみょん)의 저력이 가감없이 녹아들었다. 마음의 준비를 하기도 전에 강하게 파고들어오는 <満月の夜なら>(보름달의 밤이라면)을 시작으로 건조하면서도 가슴 한 켠에 아련함을 남기는 메가히트 싱글 <マリーゴールド(마리골드)>와 같이 이미 익숙한 트랙들, 그리고 그 사이로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ひかりもの>(빛나는 것)과 같은 신곡들이 단숨에 청자를 사로잡는다. 진솔한 가사와 감칠맛 나는 멜로디, 자신만의 스타일로 무장한 여성 솔로 아티스트의 등장으로 일본 대중음악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아닐지, 앞으로의 행보가 매우 기대된다. 

 

9. 백예린 - Our Love is Great

첫 EP인 FRANK 이후, 백예린의 음악을 하나의 앨범 단위로 들을 수 있을 때까지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4년 동안 우리는 사운드클라우드와 타 아티스트와의 콜라보레이션, 공연장에서 들려주는 미발표곡과 유튜브에 올라온 팬들의 영상을 전전하며 갈증 속에서 이따금 단비를 맞곤 했다. Our Love is Great는 그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난 청량한 오아시스였다. 섬세하고 예민하지만 결코 약하지는 않은, 백예린이 아닌 그 누구도 재현할 수 없는 사운드로 가득한 이 앨범에서 가장 아쉬운 것은 딱 두 가지이다. 하나는 디지털 음원으로만 유통된다는 것, 또 하나는 EP라는 것. 이 아티스트의 저력을 왜 JYP와 스튜디오 제이만 모르는 걸까.

 

10. Red Velvet - The ReVe Festival Day 1

 

댄스와 전자음을 기반으로 한 밝고 에너제틱한 Red 컨셉과 R&B에 뿌리를 둔 우아하고 차분한 Velvet 컨셉은 언제부턴가 서로 섞여 새로운 색을 빚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상승과 하강 그리고 긴장과 이완을 곡예하듯 넘나드는 묘한 매력을 과시하던 레드벨벳이 이제는 아예 테마파크와 페스티벌을 테마로 연작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Zimzalabim>이라는 청각적 롤러코스터를 타는 3분 동안은 그들의 5년 간의 커리어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경험을 선사함과 동시에, <Sunny Side Up!>부터 이어지는 새로운 세계를 편안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이정표 역할을 한다. 다양한 어트랙션이 포진한 테마파크를 그렇게 쭉 돌아본 끝에 마주한 <LP>의 종결부에 다다르면,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물음표 하나를 그려볼 수 있다. Day 2 와 파이널에서 어떤 곡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아직 알 수는 없지만, 짜릿한 행복을 맛볼 수 있을 것이란 사실은 확실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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