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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Charlie Brooker: ‘Once you’ve f**ked a pig on the telly, you’ve shifted the bar for what’s acceptable’

- 영드 <블랙 미러(Black Mirror)>의 시즌 3 공개를 맞아 Little White Lies에서 작가 찰리 브루커(Charlie Brooker)와 진행한 인터뷰를 가져와봅니다

- 스포일러는 거의 없지만 시즌 3를 포함한 <블랙 미러> 에피소드를 모두 보신 분들이라면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습니다.

- 각 에피소드들의 제목은 한국 넷플릭스에서 번역한 것을 따랐습니다.

- 원문은 여기서 보실 수 있어요

- 오역 오타 수정 및 기타 문의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찰리 브루커: '티비에서 돼지랑 그 짓을 했을 때(f**ked a pig), 허용치에 대한 기준을 바꾼 거예요.'


<블랙 미러>의 작가가 넷플릭스(Netflix)로 드라마가 이전한 것과 그가 왜 캐릭터들을 괴롭히길 좋아하는지에 대해 말한다. 


영국인 작가이자 방송인인 찰리 브루커를 인터뷰하기 위해 대서양을 건너는 것은 조금 이상하게(perverse) 보일지 모르겠지만, 그의 여러 장르가 뒤섞인 SF(sci-fi) 시리즈 <블랙 미러>가 채널 4에서 스트리밍 거물인 넷플릭스로 이전한 것을 뒤집어 보면(mirroring), 희한하게도 잘 어울린다. 토론토에서 새 시리즈를 선공개하면서 ― '샌 주니페로(San Junipero)'와 '추락(Nosedive)'를 상영하면서 ― 브루커는 넷플릭스의 세계적인 작업 환경(canvas) 위에서 작업할 기회와 일어서서 글을 쓰는 것(집에 있는 플레이스테이션 4와 함께)의 장점, 그리고 그가 끔찍하고 암울한 결말을 얼마나 사랑하는지에 관해 논했다.


LWLies: 텔레비전 방송에서 넷플릭스로 이전한 건 <블랙 미러>를 미국 인구의 절반이 넘는 8천만명이라는 전세계의 구독자들에게 공개하게 했습니다. 그 새로운 시청자들이 당신이 새 시즌을 준비하는데 영향을 미쳤나요?

브루커: 그렇진 않았습니다. 이번 시즌에서 처음으로 썼던 극본이 '샌 주니페로'였는데요, 의도적으로, 또는 약간은 장난스럽게(impishly) 생각은 했었어요. 왜냐면,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이 작품이 미국식으로 변하는 것(Americanised)을 우려하는 글을 읽었기 때문에, 전 "그래, X까. 하나 쯤은 캘리포니아를 배경으로 해두지. ― X발!  ― 난 그렇게 할 수 있으니까!" 라고 생각했거든요. 정말로, '국가(The National Anthem)'를 제외한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그 어느 곳이라도 배경으로 삼아도 무방했고, 그 어디도 배경으로 삼지 않았어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큰 차이점은 러닝 타임인데, 융통성이 있어서, 90분짜리도 있고, 몇몇은 그보다는 짧기도 하고, 살짝 확장된 작업환경이었네요.

이 새로운 에피소드들을 계획하는데 착수하면서, 그 확장된 작업 환경이 창작의 관점에서 어떤 걸 제공했나요?

중요한 점은, 분위기가 조금 더 다양해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꼭 암울한 것만 가득하지는 않아요, 예상이 가능하니까요. 우리는 정말 소름끼치는 결말을 가진 7개의 에피소드를 만들어왔어요. 그리고 우리는 마치 서로 다른 장르의 영화들을 만드는 것과 같은 관점으로 새 시즌에 접근했죠. 그래서 '샌 주니페로'는 마치 어른들을 위한 드라마(coming of age drama), 로맨스, 존 휴즈(John Hughes *<나홀로 집에(Home Alone)> 시리즈와 <조찬 클럽(The Breakfast Club)> 등을 제작한 작가 겸 감독) 영화 같은 작품이고, '추락'은 좀 더 사회에 대한 풍자'에 가깝고, '게임 테스터(Playtest)'는 <이블 데드 2(Evil Dead 2)>랑 비슷하죠. 이건 아주 기이하고 특이한 쇼예요. 서로 너무나 다르지만 동일한 배너(banner) 하에 묶이니까요. 좀 우습게(wanky) 말하자면, 우리는 "영화제의 큐레이팅 작업을 하는 것 같다"라고 생각했어요. 

각각의 에피소드에서, 장르가 발상의 시작점이 되나요, 아니면 당신이 평가하는 테크놀로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시작점으로 삼나요?

그런 관점에서는 약간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것과도 같아서 독특하네요. 주로 일어나는 일들은, 제가 어떤 아이디어를 갖고 있거나 또는 무언가에 대한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가끔은 그게 갑자기 충돌을 일으키며 "만약(what if)"에 대한 아이디어가 되고요. 어떤 때는 그게 굉장히 빠르게 일어납니다. 그리고 "오, 이거 추리물 같은 느낌인데, 이런 거 지금까지 해보진 않았고"라고 생각을 하는 거죠. 그렇지만 이 과정은 흥미로워요. '게임 테스터' 에피소드는 제가 "<블랙 미러> 버전의 귀신 들린 집 이야기는 어떤 걸까?"하며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왔으니까요. 대화 없이, 단 한 사람에 대해서, 한밤중에 귀신 들린 집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점에서는, 가끔은 그냥 유용한 정신적인 트릭이 되기도 해요. "스칸디나비아 느와르 스타일의 <블랙 미러>는 어떨까?"를 고민했던 건요. 90분짜리인, 우리의 북유럽 느와르물인 '미움받는 자(Hated in the Nation)'가 바로 그거고요. 



그런 점이 당신이 에피소드를 써내려가는 실제 과정에도 변화를 준 건가요? 당신은 이미 방영시간이 정해져있는 TV에서 융통성 있는 넷플릭스로 옮겨왔죠. 하지만 90분이라면, 사실상 영화 한 편인데요.

기본적으로는 영화예요. 장편 영화죠. 추리물이기 때문에 그 에피소드는 유난히 복잡합니다. 모든 것들을 다 계획해내야 했고, 지긋지긋할 정도로 오랜 시간이 걸렸죠. 미스터리 스릴러였기 때문에 굉장히 정교한 줄거리를 만들어내야 해요. 마치 전혀 다른 근육을 쓰는 듯한 느낌이었죠. 그리고 '샌 주피네로'처럼 그런 생각들을 안 하고 쓴 이야기들도 있어요. 전 사람들이 이런 말 할 때마다 "이 순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하지만, 막말로, 제가 어떤 장면을 쓰고 있는데 등장인물 중 하나가 뭔가를 말하고 전 "와 X발 이거 끝내주는 아이디언데!"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밀어붙어요. 그런 놀라움인 거예요. '곧 돌아올게(Be Right Back)'가 제가 트랜스 같은 상태에서 썼던 또 다른 이야깁니다. 머리 속으로 영화를 재생시켜서, 키보드로 그걸 묘사하기 시작하죠. 그리고 결국 결말에 도달하는 거예요. 글쓰기를 묘사하는 최악의 방법이네요....

이전에 Creative Screenwriting Magazine 소속의 한 사람이 왔었는데, "작가들에게 말해줄 조언이 있나요?"라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전 "네, 일어서서 쓰세요."라고 말했죠. 왜냐면 그 당시 즈음해서, 전 아마존에서 저렴하게 파는 작은 스탠드를 하나 사서 서서 글을 썼어요. 조금 불편한 느낌 때문에요. ― 아예 못 쓸 정도로 불편한 정도는 아니고, 살짝 불편하죠. 그말은 즉, 무엇보다도 그 짜증나는 일을 해야하기 때문에, 결국 인터넷을 하는 것으로 빠지지 않게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전 25분 동안은 글을 쓰고....나가서 잠깐 플레이스테이션을 해요. 이런 걸 밤새 하는 거예요. 야행성이 되죠. 그리고 다시 돌아가서 글을 조금 더 쓰고, 또 가서 플레이스테이션을 하고, 또 돌아오고...그리고 그때쯤 되면 다행히도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지겨울 정도로 오랜 시간동안 글을 쓰게 되는데, 그 부분이 바로 짜릿함을 느끼는 지점이에요. 그래서 제가 작가들에게 하는 조언은 항상 이런 거예요. 일어서서 글을 쓰고, Scrivener(*글쓰기 전용 소프트웨어의 한 종류)를 마련하고, 25분동안은 집중해서 쓰고, 플레이스테이션을 하나 장만하세요.  

당신의 글에서 드러나는 목소리는 TV 극본과 산문 모두에서 언제나 또렷하죠. 글쓰기가 당신에게 쉬운 편인가요?

아뇨, 그건 항상 이를 X나 뽑는 것과도 같았어요. 전 글쓰기를 싫어해요. 지금까지 써왔던 건 좋아하지만, 글을 쓰는 건 싫어해요. 지면에 매주 칼럼을 연재했을 때, 전 그게 엄청나게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그만뒀어요. 그러고 나서, 그다지 오래된 일은 아닌데, New Yorker가 제게 글 하나를 써달라고 부탁을 했, 전 "오 이거 New Yorker잖아 ― 그럼 이거 해야겠네!"라고 생각했죠. 그건 악몽이었어요. 약 1년 간은 기사나 칼럼 하나도 쓰지 않고 있었으니까요. 글 쓰는 방법을 잊어버려서 정말 어려웠습니다. 

그렇게 특정한 글쓰기의 근육을 연마했던 때가 그립진 않나요?

그립진 않아요. 그렇게 즐기면서 했던 건 아니었거든요, 결국에는요. 그렇게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을 다 소진한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해서 어느 정도는 그립긴 해요. 그런 때가 다시 올 거고, 그런 글이나 장편의 줄글을 쓰고 싶을 거라고 확신해요.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아니에요. 그건 마치, 오랜 시간 동안 만화가로서 커리어를 시작했을 때, 말풍선 작업에 지겨움을 느꼈던 것과 비슷해요. 제 경력의 어떤 부분을 모두 날려버린 건데, 좀 무서운 일이죠. 

<블랙 미러>를 하나로 묶는 분위기란 어떤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렇게 경고하는 분위기는 아닌 것 같은데요. 아마도 사색적인 것일까요?

네, 사색적이에요. 전 이 드라마를 경각심을 주는 이야기로 보진 않아요. 경고하는 이야기가 되려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공해줘야 해요. 전 뭐가 됐든 그에 대한 해결책이 뭔지는 전혀 몰라요. 전 그냥 걱정하는 사람인거죠. 그래서 암울한 이야기라고 하면, 그건 그냥 그 이야기 속에 큰 소리로 걱정을 하는 제가 있는 거예요. 가끔 전 단순하게 등장 인물들을 괴롭히는 걸 즐겨요. 왜냐면 <환상특급(The Twilight Zone)>이나 <Threads> 같이 제가 어렸을 때 즐겨 보던 이야기들이 그랬거든요. 또는 <La Sabina>라고 하는 70년대 스페인 단편 영화 같이요. 이거 유튜브에 있어요. 영화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말하지 않을게요. 잘 모르겠지만, 전 아주 끔찍하고 암울한 것들에 매료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이야기들을 쓸 수 있는지 알아보면서, 그걸 여전히 <블랙 미러> 시리즈로 만들어 내는 것은 좋은 연습이 돼요.

이렇게 별개의 파트들로 구성된 앤솔로지 시리즈라는 건, <블랙 미러>를 프로그램 정주행(binge-watching)의 고장인 넷플릭스의 변종처럼 느끼게 합니다. 그게 제작에서 고려되었나요?

매번 다루는 에피소드가 다르다는 점에서, 넷플릭스는 앤솔로지 시리즈에 완벽한 플랫폼이라고 생각합니다. 전통적으로, 각 에피소드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쇼를 만들 땐, 손에 땀을 쥐게 하면서 끝내거나 인물을 다시 등장시키지는 않으니까요. 그리고, 흥미를 끌어 올리려면, 또는 단순히 사람들에게 이 쇼가 존재한다는 걸 상기시키려면, 사람들이 다시 찾아올 여지를 남겨야 해요(you'd have to trail it). 어떤 면에서는 스포일러를 하도록 이끌지만요. 우리는 이게 광고하기에는 아주 어려운 쇼라는 점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어떤 것도 말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여지를 남기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에요. 그래서 넷플릭스나 아마존, (BBC의) iPlayer와 같은, 모든 편을 한번에 접할 수 있는 플랫폼들이 이제 나온 거죠.

언젠가 누군가가 좋은 비유를 썼더라고요. 그건 마치 집에 있는 벽장(cupboard)과도 같은데, 거기 있었는 줄도 몰랐던 거죠. <기묘한 이야기(Stranger Things)>가 시작되고, 유명한 작품이 되면서(became a thing), 갑자기 모두가 <기묘한 이야기>를 봐야 했어요. 사람들은 "<기묘한 이야기> 아직 안 봤어? 안 봤다고? 어, 그거 너네집 그 벽장 안에 있어. 가서 한 번 봐봐"라고 말해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첫 방송에 대한 압박을 느끼지 않아요. TV 방영은, 축구 중계가 방영된다고 생각하면 조금 위험하죠. 앤디 머레이(Andy Murray)가 갑자기 윔블던에서 우승을 해서 그게 당신이 보는 쇼와 동시에 방송을 탄다고 하면, 결과적으로는 그 쇼는 타격을 입어요. 모두가 평가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신경 쓰고 있어요. 그래서 평가가 점점 덜 중요해지고 있다는 건 좋은 일이고, 유효기간(shelf life)이 더 길어지죠.

새 넷플릭스 시리즈에서 Channel 4에서는 할 수 없던 걸 해봤나요?

그냥 러닝 타임이요, 정말로요. 내용 측면에서는 딱히 없네요. 제 방송 생활을 통틀어, 제 생각에, 전 운이 좋게 살아왔던 것 같아요. 기이할 정도로 운이 좋았어요. TV에서 돼지와 그 짓을 했을 때, 허용치에 대한 기준을 바꾼 거예요.